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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등록일 2019-04-15 오후 4:41:42 조회수 961
E-mail sergio16@naver.com  이름 김남규

강연 제목을 보자마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제목 그대로 내 삶이 망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한 달 정도 다니고 자퇴하고 꿈을 쫓아 스페인으로 갔었고,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한 그 선택은 끔찍한 실패로 끝이 났다.

친구들이 군대를 하나 둘 전역하기 시작할 때 쯤에야

나는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내 인생은 이대로 끝이고 나는 실패자라는 절망감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번 강연에 오신 이원준 선생님도 나와 같은 마음을 겪으셨을 것이다.

아니, 나보다 훨씬 더 힘드셨을 것이고 힘드실 것이다. 

나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수술 후 몇 십일 간 휠체어 생활을 했던 그 기억만으로도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안다.

우선, 시간이 달라진다.

5분이면 샤워하고 나와서 머리도 말릴 걸, 정확히 열 배인 50분이 걸리게 된다.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모든 것을 나를 돕는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존감이라는 것이 없어진다. 주위 사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생기지만.

버스도 탈 수 없다. 저상버스가 많이 보급되었다고 해도 우리나라 버스들은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는다.

정류장에 정차하라고 갓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정시성을 위해 최대한 빨리 문을 여닫고 운행한다.

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택시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자신의 수고를 들여 탑승하는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

사실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을 잘 알기에.

그보다도 근본적인 어려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가는 길 자체가 고난길이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위를 휠체어로 다니면 조그마한 턱에도 허리가 부서질 것 같다.

휠체어를 이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경사길은 어찌 그리 경사가 심한지 어지간한 완력이 아니고서는 오를 엄두를 내기 힘들다.

우리나라 장애인이 250만 여명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불편한 생활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니.

그런데도 아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니. 그 많은 복지예산은 다 어디로 가는 건가?

휠체어 생활은 단지 두어 달의 짧은 시간만 겪더라도 비참할만큼 힘든데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픔은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런 상상하기 힘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강사님께서는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사님과 같이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슬픔이나 시혜의 대상이 되어야한다는 인식은 꼭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도 그냥 사람이다. 나쁜 장애인도 있고 착한 장애인도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그냥 사람이다. 

한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장애가 척도가 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볼 때도, 장애인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 역할은 충분하다.

장애인을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장애인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하는 것이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노출이라는 개념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결국 우리가 장애인을 '비정상'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우리 눈에 자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페인 시절 저상버스는 분명 1분이 걸리더라도 당연하다는 듯 휠체어 승객을 태웠다.

버스에 휠체어 승객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그만큼 사회적으로 장애인들의 노출이 잦기 때문이아닐까.

결국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어떤 것이 더 수적 우위를 점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장애인들이 길거리로 나오고 자주 눈에 띈다면 이들도 역시 정상인이 될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눈길에 상처를 받더라도 더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이

물론 힘들겠지만 오히려 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굳이 수고를 무릅써가며 바꿔야하는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 소수일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이거나 아예 장애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이 노출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주 노출되면 될 수록 장애가 일반적인 것이고,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스레 변할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정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다수의 시선에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거리에 나서야한다.

그리고 당당해져야한다. 

장애인이라서 쳐다본다고 생각이 들면 그래서 그게 왜? 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약자, 소수자라고 숨어들면 자신의 권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권리를 자기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한다.

누구도 수동적인 구성원에게 권리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의 권리가 갈 길이 멀다.

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조금 더 일찍 오기를 바래본다.